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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ctus's Waits & Weill | UTO CF  |《접속》|『루트와 코드』                        관련앨범

 

 

 

 

 

 

 

 

 

 

 

 

 

 

 

 

 

 

 

 

 

 

 

 

 

 

 

 

 

 

 

 

 

 

 

 

 

 

 

 

 

 

 

 

 

 

 

 

 

 

 


아래 글을 『루트와 코드』(강정, 샘터, 2004)  중 <파스와 톰 웨이츠> 전문입니다.
강정 님의 허락하에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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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살냄새를 풍기는 뜨겁고 죽음의 살냄새를 풍기는 뜨겁고 애절한 노래들
- 파스와 톰 웨이츠

  

Apr.  11. 2002 | 굳이 바타유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과열된 육체와 육체가 섞이는 건 영혼의 맨 밑바닥으로 내려가 세계의 바깥으로 이탈하는 경험이다. 그 순간, 불타는 육체가 내뱉는 말들은 의미 이전의 언어, 즉 원시태의 직접화술이 된다. 일테면 그건 이런 식의 대화다.

  바람은 내 입으로 불려나오고, 그 긴 신음소리는/ 이 육체와 육체의 밤을 잿빛 날개로 감싼다. - 옥타비오 파스 《태양의 돌》(민용태 옮김, 청하) 중 〈육체를 보며〉에서

육체에서 발산되는 죽음과 허무, 황홀경의 음향들

  하나로 섞인 두 육체는 의식의 수면 높이 부상해 망아의 안개 속에서 불꽃처럼 명멸한다. 그러면서 문득, 사라진다. 이때 타자는 자아가 되고 자아는 자아 아닌 다른 것, 또는 자아 이전의 것이 된다. 죽음이 돌연 삶 속으로 들어오는 절정의 순간, 육체는 현실의 지평에서 급격히 상승했다가 하락하는 외계의 발성을 시작한다. 바람 같고, 세계의 끝으로 사라지는 안개 같기도 한 그 말은 불붙은 육체에서 터져나온 화염이자 연기다. 그렇듯 에로티시즘의 극점에선 육체가 가장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죽음과 허무의 음향들이 터져나온다. 그건 현실의 언어가 아니지만, 육체를 가장 강렬히 현시한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선연한 현실의 언어다. 인간은 몸의 바닥까지 거슬러 짐승이 됨으로써 가장 본래적이고 원시적인 언어를 탄생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기성과 괴성의 가수 톰 웨이츠가 허구헌날 술에 취해 육체의 황홀과 고독을 노래하는 건 인간의 본래적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본능적인 욕구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는 이렇게 노래한다.

  The Shadow boys are breaking all the laws … (중략) … And the wind is making speeches And the rain sounds like a round of applause- 앨범Rain Dogs(1985)중 Time에서

  톰 웨이츠는 누구보다도 개성적인 가수지만, 엄밀히 말해 그는 노래를 만들어 부르는 게 아니다. 그는 몸 속의 소리를 최대한 진하게 뽑아내면서 스스로를 발가벗긴다. 아주 노골적이고도 천연덕스런 노출증이 그에게는 있다. 행려병자면서 술주정뱅이에다 난봉꾼인 그는 원시적인 질감으로 가득한 자신의 알몸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멋있는 척 센 척 하지 않고 사지를 비틀비틀 허우적대며 고래고래 외쳐대는 그의 노래는 그래서 처절하게 들리지만, 어느 한 군데 맺힘이 없이 유연하다. 그 유연함은 파스가 너의 다리 사이에는 물이 잠든 우물이 있다고 노래하면서 빛과 그림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결혼(〈육체를 보며〉에서)을 성사시키는 자유자재한 언어의 곡예와 닮았다. 그 다리 사이에 잠든 우물을 바라보는 톰 웨이츠의 시선, 정확히 말해 그 목소리의 질감은 응시하는 호랑이의 눈이다가/ 일 분이 지나면 물기 젖은 강아지의 눈(〈육체를 보며〉에서)으로 변하는 핀 하나 뚫고나간 동공/ 고생 많았던 날의 동공(〈되풀이〉에서)을 연상케 한다. 텅 빈 하늘을 닮은 공허와 허무, 그리고 본능적인 욕구가 극에 달한 포악함이 하나의 눈동자에서 동시에 빛난다. 그 오락가락하는 습기와 열기는 영락없는 알코올의 성분, 섹스의 환유다.

톰 웨이츠, 탐닉이란 단어가 적실하게 어울리는 가수

  너는 말없이, 은밀하게 온다./ 와서는 분노와 행복을 일깨우고/ 이 무서운 고뇌를 불러일으킨다./ 만지는 대로 불을 붙이고/ 사물마다 어두운 목마름을 심는다.// 세상은 물러나고, 불 속에 집어 넣은 쇠붙이처럼/ 허물어져 녹는다./ 허물어진 나의 형체 사이에서 나는/ 홀로, 벌거숭이로, 껍질이 벗겨진 채 일어선다. -〈시〉에서

   이 시는 알코올의 화학반응이나 사랑이 처음 느껴질 때, 그리고 육체가 섹스에 몰입할 때의 전개과정과 흡사하다. 아울러 Jockey Full of Bourborn이나 Hang Down Your Head등을 흐느적대며 부를 때, 톰 웨이츠의 몸 속 에너지가 이동하고 전이되는 과정이 이렇지 않을까 싶다. 그런 틈입과 흡수, 폭발과 녹임은 현실의 밋밋한 표층에 갇혀있던 세계의 은밀한 틈새를 벌리면서 다리 사이에 잠든 우물로 하여금 그 응결된 물줄기를 눈뜨게 한다. 온몸이 축축히 젖고, 정신은 불타며, 거듭해서 불덩이 같은 액체가 흘러나와 에너지가 소진된다. 그러나 목마름은 또다른 목마름으로 배가 찰 뿐이고 너의 불길은 모든 입술을 태울 뿐(〈시〉에서)이다. 까끌까끌함과 부드러움, 거친 도발과 은밀한 유혹이 겹쳐있는 톰 웨이츠의 목소리는 채워지는 순간 비워지고, 비워짐으로써 기갈든 영혼의 적나라한 심부를 노출시키는 영구적인 흥분과 영구적인 갈증을 유발한다. 홀로, 벌거숭이로, 껍질이 벗겨진 채 일어선 그는 허물어진 자신의 형체 사이를 한없이 반복운동한다. 알코올과 섹스는 갈증과 흥분의 원인이자 결과다. 그런 의미에서 톰 웨이츠는 탐닉이란 단어가 적실하게 어울리는 가수다.

  진정한 언어는 혀끝과 의식의 협화음에서 탄생하지 않는다. 육체는 풍부한 언어의 활화산이자, 언어의 무덤이다. 세계의 원초적인 발성법은 혼돈과 무지, 짐승 같은 본능의 무제한적 표출에서 드러난다. 그런 원시적인 정념은 핏줄을 타고 흐르다가 육체의 가장 민감한 부분이 전체로 확산할 때 액화된 불덩이로 터져나온다. 그건 육체 자체가 언어로 변하는 순간이다. 새 말을 만들어라, 시인아/ 말은 제가 한 말을 혼자 다 들어 마시게 하라(〈말들〉에서)고 파스가 노래하듯, 톰 웨이츠는 매순간 열락과 허무의 접경에서 체화한 죽음과 고독을 몸 밖으로 토해낸다. 그러면서 나날이 새로운 소리들이 탄생한다. 그 새로움은 그러나 태어나면서 죽는다. 톰 웨이츠의 노래를 장르 불명, 스타일 불명이랄 수밖에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비 맞은 개의 황홀한 구토

  그는 자신이 뱉은 노래를 혼자 다 들어 마시면서 생경한 듯, 육체에 척척 들러붙는 노래들을 꾸준히 불러댄다. 그러니 그가 술을 끊거나, 스스로도 못가누는 뜨거운 피를 식히거나, 어느 한정된 발성과 음조 안에서 편안하고 안정되게 노래하길 바라는 건 그의 죽음을 바라는 것보다 더 참혹한 요구가 된다. 톰 웨이츠는 파스가 집어 패라,/ 채찍에 묻혀 입에다 설탕을 먹여라,/ 풍선처럼 불어대, 그리고 터뜨려,/ 피고 골수고 빨아 마셔라,/ 말려라/ 공알을 까버려라(〈말들〉에서)고 외칠 때처럼 스스로의 육신을 거덜내면서 소리의 공명관을 부풀린다. 이 비맞은 개는 산 몸에서 죽음의 살냄새를 맡고 그 황홀한 구토를 절절히 짖어댄, 희귀한 짐승이다.